
대통령과 야3당 원내대표간 국회연설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2월 16일 국정 연설에서 대통령은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임금이 북핵 개발비로 전용되었다는 낭설을 반복했다. 통일부 장관이 2번이나 말을 바꾸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대통령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정부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즉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면 국제연합의 대북제재 결의를 정면 부정한 것이며 국제공조에 배치되는 것이다. 진상이 무엇인지 국회에서 확인해 볼 대목이다. 그만큼 청와대와 통일부와 정보기관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런 난맥상으로는 대북관계의 변화, 평화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대통령의 연설문은 5962자였다. 이 가운데 ‘북한’을 54회, ‘핵’은 23회나 사용하였다. 이 연설의 대상과 주제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개성공단 기업들은 ‘대통령 연설은 원론적 얘기’라면서 ‘유감’을 표시했다. 대통령은 북한인권법 제정을 북핵 문제 해결과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북핵문제와 민생악법을 연계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연설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은 ‘대화’라는 낱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가 시계 영점상태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럼 ‘대화’나 ‘협상’ 말고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이런 계제에 혹자는 핵무장과 전쟁불사론, 미 전술핵 배치까지 들먹거렸다. 위험천만한 발상이요 무책임한 애국주의이며 국제무역을 중시하는 한국경제의 장송곡이다. ‘대화’나 ‘협상’이 아니더라도 꼭 전쟁을 벌여야 한다거나 핵무장을 통해 비대칭 전력의 균형을 모색해야 마땅한 일은 아니다. 굳이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면 ‘냉담’과 전략적 인내, 무관심과 방치 등 여러 가지 다른 대안들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다른 정책대안조차도 국내에서의 논의와 타 국가와의 관계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대화와 협상은 불통정치, 암흑정치를 끝내는 첩경이다.
대통령은 ‘미국과는 연대’, ‘한·미·일 공조’, ‘한·미·일중·러 공감대’ 상태라고 정리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와 대화라는 평화적 노력과 시도를 다해 보아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공감대를 대북 제재의 이행으로 이끌기 위한 어떤 외교적 복안이 있는지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와는 대화를 하며, 외교적 노력을 통해 연대와 공조, 공감대를 이루어 왔다. 그런데 어째서 북한을 상대로 해서는 그런 외교 성과가 달성되지 못하는지 근본적 성찰과 객관적 평가를 해 봐야 한다. 불과 3개월 전이었던 작년 12월에 남북 당국 회담이 열렸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와 배경과 과정 때문에 남북관계가 일언지하에 경색되고, 냉각되었는지 복기해 봤으면 한다.
북한핵 공포와 위험성을 회피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할 만큼 사실을 과장하거나 불확실한 정보를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애매한 정황에 근거해서 ‘두려움과 공포’란 단어를 썼다. 같은 의미의 말을 대통령 연설문에서 썼다. ‘점심 오찬’이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수용하게 만드는 ‘공포의 마케팅’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번 연설에서 당장 한국의 핵무장을 시사하거나 전쟁을 불사할 가능성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것들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극단주의자들의 군사적 모험을 극복하는 데 많은 사람의 지혜와 경륜이 모아져야 한다. 2월 7일부터 시작된 대통령 비서실의 비상근무와 우격다짐으로 이루어진 개성공단 폐쇄결정과 같은 의사결정 방식으로는 이 난마와 같은 남북대치 상황을 헤쳐 나갈 묘수가 만들어질 수 없다. 정부 스스로 갈등의 발원지가 되어 정국을 얼어붙게 만든 암흑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평화의 햇살은 대화로부터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