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 챔피언 이세돌 대 인공지능 챔피언 알파고의 대결은 인류역사 상 뜻 깊은 일이었다. 무궁무진한 수가 존재하는 바둑판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적한다는 것은 인간들이 신의 경지를 넘보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 대결에서 알파고는 처음 세 판을 이겼다. 이는 인간이 쌓아 올린 첨단기술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림1에서 보이듯이 수박보다 작은 인간의 두뇌와 대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컴퓨터들을 연결하여 집채보다 더 큰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어서 비로소 가능하였으므로 공정한 게임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
동시에, 구글의 첨단과학기술자들은 이세돌 바둑을 비롯하여 수많은 바둑들을 데이터베이스로 하여 오랜 세월 연구한 반면, 이세돌은 기계 바둑기사는 처음 대하므로 이 점도 공정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세돌은 처음 세 판에서는 패배하였으나 그 ‘기계 바둑기사’의 능력과 한계와 성격을 분석한 뒤 제4판에서는 불계승으로 깨끗이 승리하였다. 대국 내내 한 번도 수세에 몰린 적이 없이 항상 크게 혹은 작게 리드하며 끝까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승리하였다. 이세돌 9단이 한 번도 그 ‘기계 바둑기사’를 못 이겼으면 첨단기술계는 오만할 수 있었겠으나, 수박보다도 작은 머리통을 가진 조물주의 창조물이 집채 만한 머리통을 가진 기계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점은 조물주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세 판을 두어보며 알파고의 능력과 제한성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이세돌 9단은 인간들과의 대국과는 아주 다른 자세로 임하였다. 초반에는 연산에 엄청 능한 알파고와의 대결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탄탄하고 안정된 포석에 집중하였다. 권투에서도 자기 폼으로 경기를 이끌어가면 승률이 높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도전을 무시한 채 안정적 포석에 집중하였다. 이는 이세돌 9단의 자존심에 걸리는 점이 있지만, 인류를 대표하여 한 번이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짐을 어깨에 짊어진 이세돌 9단은 자존심을 꿀꺽 삼키며 초반에는 일면 소심한 바둑을 두었다. 포석에서 알파고를 앞선 것으로 판단되는 초반을 넘어선 이세돌 9단은 중반부터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였고, 도저히 믿어지는 않는 절묘한 끼어 넣기라는 ‘신의 한 수’까지 선보이면서 ‘과연 이세돌’이라는 감탄이 나오는 공략을 이어갔고, 알파고는 이해가 안 되는 수들을 두면서까지 이세돌 9단의 평정심을 흔들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불계승으로 이세돌 9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인류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고,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준 이세돌이 영웅이 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인간들은 무궁무진한 수의 바둑에서 챔피언 이세돌을 어쨌든 처음 세 판 이긴 첨단기술에 대하여 자축하는 기분도 있다. 아버지와의 씨름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할 만큼 장성한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대견한 느낌 비슷한 감정을 인간들은 첨단기술에 대하여 가지고 있다. 그 첨단기술이, 그 아들처럼, 집안의 융성에 얼마나 기여할지에 대한 기대가 거기에 존재한다.
나는 미국에서 35년여 활동하였는데, 알파고를 제작한 구글 회사는 바로 옆 동네였다. 즉, 나는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살았다. 그 곳에서 수십 년 공부하고 또 연구활동을 하였고, 그 지역 한국계 이공인들 협회(재미과학기술자협회 북 캘리포니아 지부)의 단체장을 여러 해 역임하였다. 그러므로 미국의 첨단기술계를 손금처럼 상세히 알고 있는데, 가장 아픈 점이 그림2 좌편에 보이는 미국 첨단기술계 내 인종분포이다. 중국계 인도계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베트남계, 백인들이 가물에 콩 나듯 끼어있다. 한국계는 통계상 완전 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