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대하며 들려준 이별 노래,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
‘아버지 어머니! 평안하게 계시오. 까마귀 우는 곳에 저 가겠소. 삼팔선 넘어 백두산 상봉에 태극기 날리며 죽어서 뼛골이나 돌아오리다.’, ‘아내여! 굳세게 새 세상 사시오. 우리 다시 만날 백년의 언약...’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날 20대 초반의 가장이 갓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뒤로한 채, 장남인 형을 대신하여 전장터로 떠나 면서 불렀던 이별의 노래다.
이제 그들이 노래 가사처럼 61년 뒤 백골이 되어 꿈에도 그리던 아들과 딸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최근 강원도 인제와 양구에서 발굴된 2명의 국군전사자 신원을 확인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7사단 8연대 소속으로 ‘51년 4월 한석산전투에서 전사한 故강태조 일병과 ’51년 9월 백석산전투에서 전사한 故김영석 일병이다.
故강태조(1929년, 전북 무주, 사진제공) 일병은 2009년 5월 발굴되었으나 신원확인에 필요한 단서가 없는 상태에서 지난해 6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지역 보건소를 통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유전자를 제공했던 강춘자(63세, 성남 거주)씨와 그동안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 6천여 구의 DNA 비교과정에서 친자관계가 일치되어 신원이 확인된 것으로, 아무런 단서도 없이 순수 DNA 비교검사로만 신원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5번째이다.
아버지를 찾게 된 강씨는 “남겨진 한 장의 사진으로만 뵈었던 아버지가 돌아온다니 꿈만 같다. 입대당시 불러주신 아버지의 노래가사를 평생 잊지 못하고 내게 들려준 어머니의 恨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며, “그동안 언제 어디서 전사하셨는지 몰라 막연히 6월 25일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제는 정확한 기일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故김영석(1927년, 경기 이천) 일병은 올해 6월 8일 인식표와 함께 발굴된 뒤, 인식표에 새겨진 이름과 군번을 단서로 유복자인 김인태(63세, 성남 분당 거주)씨를 찾아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였다.
김일병은 지난 현충일 ‘호국의 형제’로 명명되어 이명박 대통령 주관으로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故이천우 이등중사가 발굴되었던 강원도 양구 백석산과 불과 수백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발굴되었다.
아들 김인태씨는 “어릴적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품속에 넣고 다녔던 군복 입은 사진을 오래전에 분실해서 지금은 얼굴조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버지 소식을 제일 반겨할 어머니(전쟁 직후 재가)를 오랜만에 찾았는데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고아처럼 힘들게 살아왔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국방부는 17일 오후, 전사자 신원확인 통보절차에 따라 지역관할 사단장과 유해발굴감식단장이 유가족 자택을 방문해 국방부장관 명의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유품, 관을 덮었던 태극기 등을 각각 전달하며, 유해는 12월 중 육군참모총장이 주관하는 성대한 안장식과 함께 대전현충원에 모셔질 예정이다.
2000년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개시된 이래 신원이 확인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사자 유해는 68구(‘11년 7구)로 그동안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 6천 구(‘11. 11. 14일 현재)에 비해 저조한 실정이다.
전사자 신원확인은 최종적으로 유가족과의 DNA 검사를 통해 확인되지만 이를 쉽게 할 수 있는 인식표가 유해와 함께 발굴된 것은 고작 29개, 그러나 금년에만 이 중 절반이 넘는 15개가 발굴되어 주목이 되고 있다.
올해 인식표가 집중 발굴된 곳은 ‘51년 5월 이후 전개된 강원도 양구, 철원 등 7사단 8연대, 8사단 21연대 전투지역으로 유독 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인식표가 발굴되는 이유는 인식표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한 당시 지휘관들의 의지에 의해 장병들의 인식표 착용률이 타부대에 비해 현저히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금년도 유해발굴은 이달 말 종료되며, 올해에도 작년에 이어 1,300구 이상의 국군전사자가 발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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