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몽 수교 20주년, 몽골을 조명한다’ 기획시리즈 2
외국에서 비행기로 몽골의 수도인 올란바타르에 오면 징키스칸 국제공항에 내리게 된다. 그리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징키스칸 대로를 통과하게 되며, 몽골의 심장부인 수하바타르 광장 뒷편 정부 청사 앞 정중앙에는 징키스칸의 대형 좌상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올란바타르시 남쪽 보고드 산에는 대형 징키스칸의 초상화가 산에 그려져 있어 시내 중앙에서도 잘 볼 수 있으며, 몽골의 화폐 중 500 투그릭 이상 2만 투그릭까지 5가지 종류의 고액권에 모두 징키스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뿐만아니라 몽골의 대부분의 가정에는 징키스칸의 초상화가 그려진 카페트나 그림 또는 조각이 걸려 있으며, 최고급 호텔 이름도 징키스칸이며, 고급 술에도 징키스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몽골 정부종합청사앞 징키스칸 좌상
한마디로 몽골은 징키스칸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를 넘어 동유럽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4명의 자녀들이 4개의 제국으로 나누어서 200년 이상 대제국을 다스렸던 징키스칸의 대몽골제국은 인류 역사의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였다. 미국 타임지는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1천년 동안 밀레니엄 영웅으로 징키스칸을 선정하였다.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징키스칸의 리더쉽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1백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적은 인구와 군사력으로 교통과 운송 수단이 크게 발달되지 않았던 13세기에 징키스칸이 건설한 대몽골제국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몽골인들은 징키스칸을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몽골제국의 후예인 중국 원나라가 멸망당한 이후 오늘까지 몽골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현대 몽골인들은 과거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들이 건설하였던 대제국의 영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징키스칸이 대몽골 제국을 건국한 지 800년을 맞이하여 몽골 정부와 국민은 거국적인 대몽골 제국 건국 800주년을 기념하였다.
특별히 몽골 중심부인 수하바타르 광장에 있던 인민혁명의 영웅이자 근대 몽골을 건국하였던 수바하타르의 대리석 무덤을 국립묘지로 이장을 하고, 그 자리에 대형 징키스칸의 좌상을 설치한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미국의 한 언론은 이 사건을 몽골의 심장부에 수하바타르 대신 징키스칸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어 중요하게 평가하였다.
1921년 러시아 공산당의 도움을 받은 수하바타르 장군이 공산혁명을 통하여 중국 청나라로부터 근대 몽골을 건국한 이후 1990년 민주화 이후까지 몽골의 최고의 영웅은 수하바타르였고, 징키스칸의 이름은 국민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대몽골 제국 건국 800주년을 맞이하여 수하바타르의 자리에 징키스칸을 앉혀놓음으로써 위대한 대제국을 꿈꾸는 몽골인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몽골국립역사박물관을 방문하면 흉노, 선비, 돌궐(투르크) 등 낯설지 않은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이름들은 징키스칸이 13세기 초 대몽골 제국을 건국하기 이전 몽골의 역사의 선대 국가들의 이름이다. 유목민인 몽골인들이 건물, 유적, 기록물들을 거의 남기지 않아서 중국의 고대 문헌들을 통하여 몽골인들의 과거 역사를 연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흉노, 선비, 돌궐 등은 중국인들이 몽골인들을 비하하여 부른 이름들이다. 이들 나라들은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중국의 골치꺼리가 되는 사람들로서 징키스칸의 대몽골 제국 이전에도 남쪽 만리장성에서 북쪽 바이칼호 주변까지 흩어져 살던 20여 몽골 부족들은 통일을 이루기만 하면 중국을 위협하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었다.
21세기 몽골인들은 그들이 징키스칸의 후예인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며, 징키스칸을 통하여 미래의 위대한 몽골 건설을 꿈꾸고 있다. 징키스칸은 몽골의 과거 역사이자, 현재이며 미래의 희망인 것이다.〈공동〉: 이대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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