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
문화재청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위치한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01호)로 24일 지정 고시했다. 이로써 충청수영은 국비 등을 지원받아 정비·복원사업을 한층 탄력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지정 고시된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된 후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될 때까지 운영되었으며, 그 규모가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 속진에 배속된 군선(軍船)과 수군(水軍)은 8,414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 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서울까지 운반하는 데 사용했던 배)을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도록 호송하였으며, 근대에는 해안 곳곳에 감시초소를 두어 이양선(異樣船, 조선 후기에 조선 연안지역에 출몰했던 정체불명의 배) 정탐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 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분이 순교한 곳이다.
충청수영성은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청도 54읍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 전쟁에서 자기편에는 꼭 필요하면서도 적에게는 해로운 지점)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1973년 당시 오천성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됐고, 2008년 충청수영으로 본래의 이름을 찾았으며, 폐영 114년 만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사진설명> 충청수영성 전경 및 고지도(보령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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