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에서 매년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문화민족으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1990년부터 문화민족 창달에 기여가 많은 역사적 인물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해서 각종 기념사업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지난 7월 당진군의 대상자 추천에 의거 10월 30일 문화관광부로부터 2004년도 이달의 문화인물 총 20명중 문학분야 인물로 선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인물로 선정된 이첨(李詹 1345~1405)선생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조선초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첨의 자(字)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시호는 문안(文案),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고려말 조선시대 초의 문신이며 문장가이다.
이첨은 고려 제29대 충목왕 1년 을유(1345년) 12월 11일 신유 영동정 희상(熙祥)의 아들로 신평현 신북면 오사리(현 송악면 오곡리)에서 태어났다.
13세때 아버지를 여의였고 어머니를 따라 현재 경남 창녕군에 이사해 18세가 되던 공민왕 12년(1363년)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당계부인 개성소윤 이덕의 도움으로 개성에 올라가 구제학당(九濟學堂)에 입학해 21세에 감시 2등으로 합격해 진사(進士)가 되었다. 첨이 24세이던 공민왕 17년(1368년) 구제에서 베푼 친시문과에서 장원급제를 하였다.
공민왕 20년(1371년) 6월에는 신돈의 전횡에 맞서 지통주사(知通州事)로 좌천되었지만 고려 재건의 우국충정으로 살았다. 공민왕 23년 12월에 승봉랑 좌정언 지제교에 제수되어 내직에 오르고, 우왕 원년(1375년) 4월에 봉직랑우헌납의전지제교에 제수되고 6월에 좌헌납지제교에 제수돼 자금어대(紫金魚袋)를 받았다.
고려왕실 수호파인 이색, 우현보, 정몽주, 이첨 등이 공양왕을 보필하고 있었는데 이때는 춘추관 편수관에 제수되었을 때다. 이첨이 54세이던 태조 7년(1398년) 가선대부 이조전서 집현전직학사 지제교에 제수되었다. 정종 2년에 이방원(태종)에게 전위하고 첨서삼군부사 이첨을 명나라에 보내 주문하게 해 귀국때까지 5개월동안 고생을 하며 견문을 넓힌 것이 관광록에 남겼다. 이때 쓴 시가 동문선에 실려 있다.
태종 4년(1404년) 이첨의 모역죄안과 박돈지의 간률을 범한 죄안을 이유로 지금의 파주로 유배가 되었다. 원평의 임진별서에 우거하며 평생 모아온 시, 문, 장 등을 모아 대집필하여 25권의 쌍매당집을 발간했다. 이첨은 태종 5년(1405년) 3월 30일 파란 많은 인생을 마쳤다. 그의 저서로는 쌍매당집과 저생전이 남아 전하고 있다.
쌍매당 이첨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장의환)는 지난 11일 이사회를 시작으로 올 연말쯤 세부적인 계획이 결정되면 내년 7월 기념의 달에 ′쌍매당 이첨선생의 학문과 사상에 관한 초청강연회′와 연구논문 발간 등이 있을 예정이다.(문화공보과 35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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