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자녀의 성(姓)을 정할 때 아빠의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도록 한 ‘부성(父姓) 우선주의 원칙’을 폐기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한 비혼(非婚) 1인 가구, 노년 동거, 위탁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생활·재산 등 지원 방안을 확대하기로 했다.
여성가족부는 2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4차 건강가정 기본 계획’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향후 5년간 정부가 추진할 가족 정책 방향을 정리한 것으로 1인 가구 증가와 가족 형태 다양화, 젠더 갈등 지속 등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게 핵심 취지다.
이번 기본 계획은 1인가구 증가 등 가족 형태와 가족 생애주기의 다변화, 가족구성원 개인 권리에 대한 관심 증대 등 최근의 급격한 가족 변화를 반영했다.
현행법에서도 혼인신고할 때 부부가 협의할 경우 엄마 성을 따를 수 있다. 다만 혼인신고 기간 외에는 무조건 아빠 성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정부는 이런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한 부모 가정이나 재혼 가정 등에 차별이라고 보고, 자녀 출생신고를 할 때 누구 성을 따를지 부모가 협의해서 정하도록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혼인·혈연·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민법과 건강가정지원법(건가법)도 개정할 계획이다. 현행 민법 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 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정부는 이 조항을 삭제해 가족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출생 신고 때 ‘혼외자’와 ‘혼중자’를 구분하도록 한 가족관계등록법과 민법도 개정한다. 미혼부의 출생 신고 요건도 완화된다. 기존에는 혼외자가 태어날 경우 원칙적으로 엄마가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미혼부가 신고를 하려면 아기 엄마의 이름·주소 등 인적 사항을 모를 때에만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혼부가 아기 친모의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협조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법적 혼인 관계와 사실혼 관계만 '배우자' 범위에 포함된 현행 가정폭력처벌법를 개정해 ‘비혼 동거’ 등 친밀한 관계도 포함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방송인 사유리씨 경우처럼 미혼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 의료비를 지원할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논의에 나선다. 여가부 측은 “우선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법, 윤리, 의학 등 쟁점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인 가구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가사 관리 교육’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한다.
정부는 비혼·동거 가족들이 혼인·혈연 관계 가족들처럼 주거·의료 등 각종 권리를 보호받는 방안도 검토해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비혼·동거 커플도 아파트 분양에서 ‘신혼 부부 특공(특별공급)’ 자격을 줄지 등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또 연금이나 사회보장제도에서 유족과 피부양자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논의한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가족의 개인화, 다양화, 계층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안정적 생활 여건을 보장하며, 함께 돌보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다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