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65) 전 대통령은 27일 저녁 늦게까지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변호인과 구속영장 실질 심사 대책을 숙의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55) 변호사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3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3시 40분쯤 삼성동 자택을 찾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 자택으로 들어간 뒤 저녁 6시 50분쯤 나왔다.
변호인단 일각에선 "(영장 청구를) 예상했지만 허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변호인단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라도 불구속 수사를 하지 않겠느냐는 한 가닥 기대가 있었지만 검찰이 결국 정치적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밝힌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황성욱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국가 문화 융성을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하라'는 큰 방향을 제시했을 뿐 권력을 남용해 기업의 목을 비튼 적이 없다"며 "혐의가 중대하다는 검찰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황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정호성(구속 기소) 전 비서관에게 '최순실(구속 기소)씨에게 연설문 표현을 수정받으라'고 지시한 일은 있어도 정부 비밀문서를 유출하라고 지시한 일은 없다"고도 했다.
황 변호사는 또 "검찰과 특검에서 증거는 다 수집을 했고,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 삼성동 자택에서 줄곧 머물러 온 사람이 어떻게 증거를 인멸하겠느냐"며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의 공범도 아니고, 뇌물을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증거인멸 우려'는 근거가 없고, 국정 농단을 지시하거나 뇌물을 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구속된 다른 피의자들과의 형평성'도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오는 30일로 예정된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검찰이 적용한 혐의에 대한 반박 논리를 집중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삼성 뇌물 혐의' 부분을 가장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이 부분과 관련해 어느 정권이든 재단을 설립하면 기업이 지원을 했고, 미르·K스포츠재단 역시 그 같은 전례에 따랐을 뿐 '강요'나 '뇌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 역시 어느 정권이나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변호인단은 또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가 사익(私益)을 챙기는 것을 돕기 위해 포스코에 펜싱팀을 창단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에 대해서는 "최씨가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을 박 전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날 검찰의 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자택 인근으로 모여들어 집회를 가졌다. 오전엔 수십 명 수준이던 지지자들은 오후 7시쯤엔 4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낮 12시 30분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카페에는 '전원 지금 즉시 삼성동으로'라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왔다.
정광용(58) 박사모 회장은 "고영태를 먼저 잡았어야 하는데 독일로 도망쳤다"고 했다. '박근혜 지키미 결사대' 회원들은 확성기로 "대통령 만세"를 외쳤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김수남(검찰총장)을 구속하라" "김수남을 파면하라"는 구호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거나 애국가를 불렀다.
한 70대 여성은 "난 살 만큼 살았다"며 "(대통령이) 구속되면 죽어버리겠다"고 고함을 쳤다. 오후 7시가 넘어 박 전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가 방송 촬영기자들을 폭행해 잇따라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경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에 6개 중대 480명을 배치했다.
청와대도 침통한 분위기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인데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지 않으냐"며 검찰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