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여자 화장실에서 부터 시작 이용시간 남성보다 2배 이상 길어
얼마 전 며칠 동안 홍콩에 머문 일이 있었다. 연일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민주화시위에도 불구하고, 쇼핑의 천국이라는 이름답게 명품으로 가득한 쇼핑센터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화려함보다 더 신기한 것을 발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에 눈길이 멈추었다.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명품숍들 사이로 길게 줄지어 서있는 화장실 앞 여성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나 영화관 등에서 여성들이 항상 경험하게 되는 화장실 앞 줄서기를 홍콩에서도 똑같이 보게 된 것이다.
아마 홍콩 여성들도 바로 옆 한산한 남자화장실을 쓰고 싶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광저우 여대생들의 남자화장실 점령사건’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난다. 여성화장실 확대를 요구하면서 여대생들이 퍼포먼스 시위를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나 홍콩에서나 유독 여자화장실 앞에만 긴 줄이 만들어지는 것은 왜일까?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화장실 평등(Restroom Equity)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은 생리적 차이, 자녀 동행 등의 이유로 여성의 화장실 이용시간이 남성보다 2배 이상 길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여성화장실을 남성화장실 보다 2배 이상 설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2006년 이후 일정규모 이상의 관람장 등의 남녀 변기수 비율을 1 : 1.5로 규정하였고, 2013년부터는 일부 고속도로 휴게소(15개소)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화장실 평등(Restroom Equity)’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성별영향분석평가”라는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정책화된 개념이다.
성별영향분석평가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성, 사회·경제적 격차 등의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정부정책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하도록 하는 제도로서, 이미 전 세계 90여개 국가에서 시행경험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실시되고 있는데, 2004년 중앙부처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모든 지자체의 법, 계획, 사업 등에 적용되고 있다.
이 제도는 흔히 오독(誤讀)되는 것처럼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별을 중심으로 형평성을 저해하는 요인들에 대한 개선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개선을 이루어내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리하도록 지하철 손잡이 길이를 다양하게 개선하고, 여성들의 암수검율을 높이기 위해 검진기관의 지정기준을 완화시켰으며, 유족연금 지급 시 남성배우자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주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위에서 말한 여성화장실 설치비율 확대 또한 생활체감형 제도개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여전히 성평등한 사회, 작은 것에서부터 형평(Equity)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는 역부족이다. 2012년에 이루어진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예로 들면, 전국의 302개기관에서 1만3,522건이나 되는 분석이 이루어졌지만, 실제 제도개선까지 이루어진 사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또 전문가 및 관계공무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고, 따라서 생활 속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제도개선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전국적 차원의 것이기는 하지만, 충남도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진다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들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제안, 시민모니터링단 등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이 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평등 의제를 발굴, 분석, 제도개선까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또 집약되고 집중된 추진체계를 만들어 실효성을 높이는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생활 속 그 작은 변화가 우리사회를 더 성평등하게 느끼는 중심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