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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사벨 아옌데 최신작 '바다의 긴 꽃잎'
  • 김태구
  • 등록 2022-02-22 14: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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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민음사


양극화의 시대에 사랑과 우정, 연대를 촉구하는 뜨거운 소설


『영혼의 집』의 작가,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최신작이자 스무 번째 소설 『바다의 긴 꽃잎』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스페인 내전을 겪은 주인공들이 파시즘의 광풍을 피해 세상 건너편 칠레로 망명을 떠나 그곳을 또다른 고향으로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리는 기나긴 여정이 작가 특유의 매혹적인 문장으로 펼쳐진다. ‘바다의 긴 꽃잎’은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언젠가 칠레」의 한 구절인 “하얗고 새까만 거품을 허리띠를 두르고, 바다와 포도주와 눈[雪]으로 이뤄진 기다란 꽃잎”에서 따온 것으로, 시인과 이사벨 아옌데의 조국 칠레를 가리킨다.


작가가 밝힌 대로 『바다의 긴 꽃잎』은 실존 인물 빅토르 페이 카사도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허구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인데, 아옌데 자신 역시 주인공처럼 피노체트 군부독재를 피해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떠나야 했던 경험이 있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의 아픔과 비극적인 역사의 상처를 더없이 생생하게 그려 냈다. 그러나 소설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역사라는 거역할 수 없는 물줄기와 고난 속에서도 우리 인간을 버티게 해주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숨통을 죄어오는 파시즘을 피해 칠레로 망명해야 했던 2천여 명을 오로지 형제애로 환대한 스페인 영사 파블로 네루다와 칠레 국민들, 그리고 망명객으로 칠레로 건너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에 맞서 다시 한번 싸움에 뛰어든 주인공 빅토르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자신이 내밀었던 환대와 연대의 손길이 삶과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우리가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사벨 아옌데가 이 소설에 처음 붙인 제목은 ‘항해(Navefaciones)’였다. 우리 인간은 역사라는 거대한 바다가 일으키는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미소한 존재이지만, 또 개개인의 삶이라는 물결 위에서 자기만의 배를 타고 나아가는 항해자라는 의미였을까. 판데믹의 시간 속에서 자기만의 거품 안에 머물러 양극화가 심화하는 지금, 여전히 세계 곳곳에는 연대와 환대의 손짓을 구하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바다의 긴 꽃잎』은 이 환난의 시대에도 우리가 손을 뻗어 사랑과 우정을 나눠야 한다고 뜨겁게 촉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내전으로 얼룩진 스페인에서 시작해 망망한 대양 너머 칠레와

남아메리카에서 마무리되는 한 남자와 한 여자, 한 가족의 감동적인 대서사시


1938년, 스페인 내전이 한창인 카탈루냐 지방. 의대생인 빅토르 달마우는 끊임없이 전장에서 이송되는 군인들을 치료하며 밤낮없이 바쁜 날들을 보낸다. 그는 이미 심장이 멈춘 어린 병사의 목숨도 살려낼 정도로 외과 수술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이자 음대 교수인 아버지 마르셀과 시민군에게 글을 가르치는 어머니 카르메가 사는 집에는 이제 그들이 딸처럼 데리고 사는 음대생 로세르만이 남아 있다. 빅토르의 동생 기옘 역시 반란군에 입대해 마드리드 전선에서 전투 중이다.


그러나 내전에서의 승리는 요원해 보이고, 마르셀 달마우는 공화국의 암울한 미래를 예감하며 전쟁 중에 숨을 거둔다. 기옘은 아버지의 제자이자 누이동생과도 같은 로세르와 사랑에 빠지지만 얼마 안 있어 전투에서 사망하고, 로세르의 뱃속에는 둘의 아이가 잉태되어 자라고 있다. 동생의 전사 소식을 차마 전하지 못한 빅토르는 동료 아이토르에게 어머니와 제수의 피신을 부탁한다. 만삭의 로세르, 카르메와 아이토르는 프랑스 국경을 향해 피난길에 오르고, 어느 날 밤 카르메는 두 사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남은 둘은 천신만고 끝에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의 탈출에 성공하고, 로세르는 포로수용소에 넘겨졌다가 조산원으로 거처를 옮겨 아이를 낳는다.


한편 빅토르 역시 이런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같은 수용소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그의 행방을 찾아 나선 아이토르와 재회하고 로세르와도 다시 만난다. 빅토르는 스페인 난민들을 싣고 칠레로 갈 위니펙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칠레 정부의 위임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찾아간다. 그러나 직계 가족만 동행 가능하다는 조건 때문에 동생의 사망을 로세르에게 알리고, 둘은 서류상의 부부가 되어 2천여 명의 난민들과 함께 위니펙호에 오른다.




파시즘에 반대하고 스페인 내전 난민과 칠레 민중과 연대한

소설의 숨은 주인공 시인 파블로 네루다


『바다의 긴 꽃잎』에는 스페인 내전부터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까지 폭력과 비이성의 역사를 살아낸 실제 인물들과 허구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 주인공 빅토르의 삶의 전환점마다 큰 영향을 미친,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있다. 소설의 각 장을 여는 시는 모두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네루다의 시들이다. 네루다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많은 지식인과 젊은이 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 당시 마드리드 영사를 지냈다. 외교관이라는 직책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했음에도 그는 반파시즘 규탄 대열에 합류했고, 「죽은 민병대원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시를 써서 공화파 집회에서 낭송해 보직 해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내 마음속 스페인』이라는 시집을 출간해 내전을 겪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1939년 전쟁이 끝나고 파시스트 군부의 손에 들어간 스페인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맞닥뜨린 냉혹한 국제 현실 속에서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국가가 칠레였다. 칠레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페인 난민들을 공식적으로 받아 주었고, 이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한 이가 파블로 네루다이다. 그는 프랑스에 수용된 난민들의 참혹한 현실을 직접 칠레 대통령에게 전해 프랑스 주재 특별 영사로 파견되어 난민들의 망명을 도왔다. 그 과정이 소설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네루다는 훗날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에도 크게 기여한다. 소설에 나오듯 그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좌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아옌데를 추대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였지만 일찍이 빈민 의료 봉사를 통해 사회 부조리와 모순에 눈을 떠 정치에 투신한 인물로, 세 번의 낙선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작가의 친척이기도 한 아옌데 대통령은 칠레 사회의 변혁과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탈피를 꿈꾸었으나 임기 중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로 사망했다. 그는 『바다의 긴 꽃잎』에 전용차에 탄 채 멀리서 카르메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힘든 시절이면 빅토르와 체스를 두는 인간적인 면모의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이사벨 아옌데는 사회 정의에 민감하고 따뜻한 형제애를 지닌 의사 빅토르 달마우를 그리며 살바도르 아옌데의 모습을 적잖이 투영했을 것이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삶을 선택하는 아옌데의 여성 인물들


주인공은 남성인 빅토르이지만, 이사벨 아옌데의 다른 모든 소설들처럼 『바다의 긴 꽃잎』에는 삶의 의지로 가득 찬 강인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억압받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선택한다. 만삭의 몸으로 고된 피난길에 올라 결국 자유의 국가 칠레로 건너간 로세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자기 삶을 놓지 않은 카르메, 전쟁터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삶을 바친 엘리자베트, 자기 안의 열정에 솔직히 화답하고 또 그 열정이 남긴 상처를 이겨내어 새로이 태어난 오펠리아.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시대에도 굳은 의지로 삶을 개척해 나아간, 주인공 빅토르보다 용감하고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페미니즘이란 결국 타인에 대한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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